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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정치 6권 2호] 로컬 지정학의 재현: 6ꞏ25 전쟁과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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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부경대지방분권발전연구소 조회 14회 작성일 26.06.1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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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 이대희(국립부경대)

이 글은 부산이라는 로컬의 지정학이 한국전쟁과 관련해서 재현되는 방식을 고찰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한반도의 동남부 지역으로 후퇴한 국군과 유엔군이 부산을 중심으로 설정한 낙동강 방어선을 한국에서는 부산 교두보로 미국은 Pusan Perimeter라고 불렀는데 두 명칭은 전쟁 초기에 전쟁에 대한 양측의 입장 또는 시각의 차이를 보여주는 재현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은 부산에 많은 변화를 초래했지만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한국 제1의 항구로서의 입지도 확고히 다지게 되어서 오히려 부산은 전쟁의 수혜자라고 할 만하다. 부산은 전쟁 기간 거의 내내 임시수도 역할을 했고, 대량의 피난민, 미군과 전쟁 물자의 유입으로 항구 도시 특유의 혼종성이 심화되어 부산의 독특한 지정학적 풍경을 만들었다. 전쟁이 초래한 이런 변화는 사실 부산의 지역사(geohistory)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고, 국제정치를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부산은 조선 시대에 일본과의 교류인 교린의 창구였고,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와 일본을 연결하는 관문이었다가 냉전과 한국전쟁으로 그 연결은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까지 확장되었다. 한국전쟁으로 가장 수혜를 입은 부산의 경제 발전은 지역주의 논쟁에서 영남 대 호남의 갈등을 호남의 경제적 소외로 설명하는 논리에 객관적인 타당성을 부여하는 용도로 인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영남의 경제 발전이란 실상 부산과 경남의 경제 발전이고, 부산과 경남의 경제 발전은 가깝게는 한국전쟁의
산물이고, 더 멀리는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지역사적 산물로 경로의존성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역 간의 격차는 영남과 호남의 격차가 아니라 항상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문제였다.


주제어: 부산, 한국전쟁, 로컬 지정학, 재현, 지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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